제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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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16 12:12
비봉에서 열리는 류습장군개선 합굿축제에 대해 문의합니다.
 글쓴이 : 류효신
조회 : 1,475  
비봉면 내월이에서 열린 류습장군 개선 합굿축제에 대해 문의합니다.

 

Q: 얼마전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세종원년인 1416년 류습장군이 대마도 정벌에 참여한 것을 기념하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제5회 류습장군개선 합굿축제가 지난 3일 비봉면 내월리 장승공원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여기서 류습장군은 충숙공(류혼)의 동생인가요?



A: 결론적으로 말해서 다른 분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류습장군은 高興柳氏(고흥유씨)로 동명이인(同名異人) 입니다. 류습장군은 紆州黃氏(우주황씨) 中始祖(중시조)인 黃居中(화거중)의 사위이시며 그의 묘소는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습니다.

 축제에 등장하는 류습 장군(1367~1439)은 고려·조선 시대의 무신.
본관 고흥(高興). 시호 양정(襄靖). 고려의 시중(侍中) 탁(濯)의 아들. 음보(蔭補)로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가 되었다. 1392년 조선 개국 뒤 과의상장군(果毅上將軍)에 특진하였으며, 태종 때는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고 예조·병조 등의 전서(典書)를 지냈다.
그뒤 전라도 도절제사 등을 지냈고 이어서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에 승진했다. 1419년(세종 1) 우군 원수로 이종무 총장군과 함께 쓰시마섬[對馬島] 정벌에 참전했다. 사후에 류습장군은 장인인 황거중의 무덤이 있는 비봉면 내월에 모셔졌습니다.

[출처] 유습 | 두산백과

 

반면에 충숙공의 實弟(실제)인 장령공 柳濕(류습)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주류씨 3파의 중시조의 한분인 장령공 류습의 조부모 부모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실전하여 분명한 기록을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충숙공은 3형제였다는 사실은 입증되었습니다. 형인 충숙공 류혼의 사적이나 기록들을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고려말기 1330~1400사이 인물이며, 1360년경에는 전주시 남쪽 곤산(坤山) 아래에 사신 것으로 보입니다. 장령공은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운 것으로 유명하였으며, 부인 전주최씨는 가정을 잘 다스리기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슬하에 5남 1녀를 두셨는데 5남 모두 과거합격하거나 관직에 진출하였고, 딸은 과거에 합격한 심효생에게 출가하였다. 따라서 5자1서가 함께 과거급제와 관직진출로 장령공께서는 봉정대부 사헌부 장령(掌令: 종4품 벼술)과 완산백(完山伯)으로 추봉되셨으며, 부인은 여성으로 최고의 품계인 삼한국 대부인을 수봉하였다. 돌아가신 후에 전북 완주군 고산면 율곡리 분토동에 묘소를 만들었습니다.

2013.1.16 류효신 정리

류효신 13-08-21 13:08
 
고흥류씨(흥양류씨) 개괄...시조 유영은 원래 신라의 선비로 신라말에 정치가 혼란하자 흥양(고흥)으로 이사 하여 고려 개국후 호장을 지냈다. 고흥류씨는 류차달을 시조로 하는 문화류씨계와는 계통을 달리한다. 시조의 7세손 류청신이 고려 충선왕 때 고흥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고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고흥은 전라남도 고흥군의 지명이다. 시조의 묘소는 경기도 개풍군 미륵산에 있으며 향사일은 음력 10월이다. 주요 인물로는 고려 충숙왕때 임금을 모시고 원나라에 간 류청신(호도나무를 국내로 가져왔으며,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거기서 죽음), 대마도 정벌을 벌인 류습 장군, 설화문학의 대가 류몽인, 조선말의 의병장 유인석, 3.1 만세운동의 유관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