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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29 15:52
進學齋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글쓴이 : 류효신
조회 : 1,221  
進學齋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1.全州柳氏 中始祖 忠肅公

주지하는 바와 같은 전주류씨는 조상이 다른 3분의 중시조(혼. 습. 지)를 모시는 토성씨족이다.그중 전주류씨 충숙공파는 고려말의 대문호이자 충신인 류혼(시호 충숙공)을 중시조로 모십니다.  충숙공은 고려말 대학자인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등과 활발한 교류를 할 정도 학식과 덕망이 높은 분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혁명정부에 가담하지 않아 귀향을 가셨고. 그 이후 고향인 전주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보모님을 효성으로 모신 충효의 표본이 되는 분이십니다.


2, 朝鮮建國과 全州柳氏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충숙공께서는 조선왕조에 발을 들여 놓지 않고 귀향, 낙향, 은거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혁명세력으로부터 갖은 회유와 협박을 받았을 것이며, 부모나 조부의 행적이나 산소까지도 은닉하고 살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새로운 혁명세력에 가담하지 않는 어떤 충의지사도 무사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고 자식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피신과 은거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조상에 대한 기록이나 묘소도 감추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충숙공 부친과 조부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 대문호가 저술서 한권 안남긴 것, 자식이나 손자가 지방관리 정도로 끝난 것을 보면 이런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왜란이나 전쟁중에 목조건물이 불타 이 모든 자료들이 불타 없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朝鮮建國 100年, 彭成 그리고 두 아들

충숙공 할아버지가 신정권에 발을 들여 놓지 않고 야인으로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셨기 때문에 자손들은 지방의 저급관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선 건국이 100년 이상 지나면서 류팽성의 아들인 세화와 세무가 장흥부사, 청송부사까지 역임하는 중앙정부의 관직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가 류팽성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자 자식들이 사제를 털어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 선영에 성대히 장사 지내고 후손들이 제향을 위해 진학재란 제실을 지어 운영하게 된다. 그런데 예전에는 대형 건물이 부족하여 많은 선비들이 이런 장소에 모여 학문과 정책을 토론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즉 진학재는 후손들이 선대의 제사를 위해 지어 놓은 제실의 역할 외에도 여러 지역의 선비들이 모여 교류하는 후에 발달하게 되는 서원의 초기 성격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모이는 선비들은 대체로 호를 사용하는 정도는 아니었으며 따라서 류팽성 할아버지도 진학재란 호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한 류팽성 할아버지는 생원이었으며 진학재란 명칭에서도 벼슬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4. 進學齋의 관련 흔적 추적

일단 충숙공 할아버지의 제실인 肅門齋는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있다. 이도 충숙공이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은거하면서 선비들과 만나 학문과 도량을 논한 장소에 후손들이 사재를 털어 제실을 지어 자손들의 모범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런 근거는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에 있는 전주류씨 虎巖齋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제실 건물로 전주류씨 유극서(유습의 아들)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경북문화재자료 제 409호다. 이 건물은 전형적인 4칸짜리 제실로 전주류씨 자손들이 모여 제향하고 선비들이 정보와 의견을 나누는 장소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肅門齋. 虎巖齋, 그리고 進學齋는 다행스럽게도 집 齋字를 사용하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으며, 그 운영성격도 비슷함을 알 수 있다. 

5.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따라서 진학재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몇 가지는 정확해 지는 것입니다.
1) 후손들이 조상의 祭享을 위해 지는 건물이다. 2) 경향의 종친과 선비들이 모여 학문과 정보를 나누는 소통의 장소였다. 3) 서원으로는 발전하지 못했지만 일부 교육기능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진학재는 류팽성 할아버지의 호가 아니고 류팽성 할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제향의 장소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실명칭에 경어의 표현인 공을 붙여 사용하는 진학재공파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되므로 향후 進學齋 門中, 進學齋 宗中이란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일: 2011.07.25, 전주류가 충숙공파 19세손 류효신 작성.

류기송 14-04-18 18:57
 
1932년에 정래화(鄭來和)가 편찬한 전주생진청금록을 보면 혼(渾)파 柳彭城 은 生員 全州人 字耆叟 號進學齋 文誠公 良梓后로 되어 있어 진학재는 號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