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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肅文齊(숙문재)에서 !!!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 전주 김제간 4차선 도로
이쪽 저쪽에 묘소와 재실이 떨어져 있다.
묘소 입구에는 커다란 동백나무가 시립하듯 양편에
서있고,  충숙공(渾)의 묘소는 석물을 도굴 당하는
수난을 겪었는데 수 삼년전 새로 단장하고 석물도
새로 새워 갓을 씌운 묘갈에는 머리에 예서(隸書)로
고려 좌익공신 광정대부(高麗左翌功臣匡靖大夫)라
새겨져 있고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이란
작호(爵號)와 충숙(忠肅)이라는 시호(諡號)도
새겨져 있으며,

숙문재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

앞에는 아드님(崇老) 내외분이 모셔져 있다.
길 건너 재실의 대문은 행랑이 양쪽으로 달린 솟은 대문으로 문 가운데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있고 아담한 한옥 재실이 보이는 숙문재(肅門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재실은 정면 5칸 측면 칸 반으로 팔짝 지붕에 겹처마 전통 한옥기와로 지어져 있으며, 둘레에는 높은 소나무들이
둘러싸여져 초를 서듯 서 있다.
충숙공은 諱(휘)가 渾(혼)이며 초호(初號)가 동산(東山)이다.
공(公)은 어려서부터 영민(潁敏)하고 천성이 깨끗하고 곧으며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고려 공민왕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간성왕(杆城王)때에는 벼슬이 찬성사(贊成事 - 정2품)에 이르렀으며,
목은(이색) 포은(정몽주)과 도의로 교유하며 강상(綱常)을 바로 잡으려 했었다.
목은, 포은이 말하기를 '진리는 바꿀수 없다며 끝가지 절개 지킨 사람은 바로 이사람이다.' 했는데
과연 나라 일이 날로 그릇되어가고 어지러워짐에 벼슬을 버리고 완산(完山)에 은거(隱居)하였다.
임신변혁(이성계가왕위에 오르던날)에 새조정(朝鮮)에 하례하지 않았다는 연고로
충숙공 부자(父子) 등 11인을 남해로 귀양 보냈는데,
이때 귀양간 분은 밀직사 성석린과 류혜손등 이었다.
후에 돌아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송죽같은 절의(節義)를 지켜
자손에게 "이씨조선에서는 다시 벼슬하지 말라"
유언하고 매일 송경(松京)을 바라보고 그리다 생을 마쳤다.

--- 讚 詩 ---
                                             
우인  경우수
해가 바뀌어 입춘 누런 토끼의 해 아름다우니
완산 깊은 골 숙문재로구나
높은 분상 뒤에는 송죽이 초를 서고
신도비 앞에는 오고가는 큰 길이로다
부자가 멀리 귀향을 가 충절을 지켰으며
형과 아우 손을 맞잡고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했도다
같이 교유하던 목은 포은이 다하여 칭찬을 했으니
아 !! 이 같은 무리 얼마이겠느냐?